[Sad Radio 004] 아메리카노 writing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특히 아메리카노를 아주 좋아한다. 커피 없이 살 수 없어라고 외칠 정도는 아니지만, 왠지 식후에 - 특히 점심 -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지 않거나, 혹은 누군가 기다릴 때 손 안에 아메리카노 한잔 정도 들고 있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어색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떤 의미로 얘기하면 나는 이미 그러한 라이프 스타일에 길들여진 노예 혹은 허세남일 뿐이야라고 얘기해도 크게 반박하진 않을 것 같다. 점심 먹고 난 뒤의 아메리카노는 무언가 분명 소화제 역할을 할 것 같고, 시간을 떼우는 자리에 아메리카노가 있으면 뭔가 사색이라도 할 것 같은 상황을 억지로라도 제공해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난 의미 없는 시간 따위 보내고 싶지 않아라는 각오로 아메리카노라는 정당한 매개물에 투자를 한다고 자위한다.

사실 아메리카노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지, 그리고 커피라는 것이 어느덧 내게 중독성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 한 것이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다. 실제로 아메리카노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조차 몰랐던 것이 불과 몇년 전 일이니까 말이다. 드립커피와의 차이점이 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사실 내게 있어 커피 - 걔중에서도 아메리카노 - 라는 존재는 알게 된지는 오래 되었지만 친한 사이가 된 건 불과 얼마 안 된 고등학교 동창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메리카노 예찬론자이긴 하지만 실상 전문가가 된마냥 원두의 출신 성분을 따진다거나 원두를 어떤 방식으로 로스팅하고 어떤 식으로 원액을 추출을 해내는 지 따위에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없다.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그렇게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좋아한다고 말할 순 있는 것이다. 그냥 어떤 가게는 맛없다. 어떤 가게는 너무 흐리다. 어떤 가게는 향이 더 좋다. 어떤 가게의 아메리카노는 시큼한 맛이 강하다. 어떤 가게의 맛은 그냥 숭늉 맛이다. (실제로 너무 물을 많이 타면 아메리카노는 숭늉 맛이 나기도 한다.)

이런 내게도 아메리카노에 대한 단 하나의 기준이란 것이 있다. 제 아무리 무더운 한여름이라도 절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인데, 물론 이것이 아메리카노에 대한 예의라든지, 진정한 에스프레소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여야 해라는 따위의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무더운 날씨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숭늉보다 더 가벼운 느낌이라 너무나 순식간에 마셔 버린다. 생각해보면 커피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적 의미 중에 하나로써 '여유로움'이란 것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분명 내게는 그렇다. 시간적 여유, 심리적 여유, 금전적 여유 등등, 커피는 촉박함과 서두름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일회용 믹스 커피는 그 반대의 느낌을 주긴 하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뭔가 서두르는 듯한 느낌이다. 목이 탈때는 물 처럼 벌컥벌컥 마실 수도 있고, 되려 빨리 마시지 않으면 얼음이 녹아 정말 물처럼 되어버릴 수 도 있다. 그래서 더운 여름에도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리필이 가능한 커피집에서도 이상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리필은 더 비싸다. 얼음값 때문인건가...

덧글

  • ~~~ 2014/04/03 07:30 # 삭제 답글

    아메리카노 검색하다 그냥 눈에 띄어서 님의 글을 읽어봤습니다.
    마지막 문단은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어도, 여유로운 느낌이 들기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고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좀 생뚱맞는 태클 같지만^^', 한가지 객관적인 정보를 드리면
    커피의 아로마 즉 '향'은 높은 온도에서 빨리 사라지기에,
    실제로 맛의 관점에선 '아이스아메리카노 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서두르는 선택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물론 한여름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원샷하는 경우라면, 양적인 측면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쪽이 좀 더 여유를 즐길 순 있겠지만요.
    그나마 한여름에 '커피의 맛과 님이 추구하는 여유의 벨런스'를 절충하는 법'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실 때 샷 추가에 얼음 많이'가 그나마 묵직한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찬 얼음층에 아로마가 갇혀서 향이 빨리 날아가지도 않을테고, 얼음이 녹더라도 샷추가로 인해 진한 맛의 아메리카노가 쉽사리 묽어지지도 않을테니까요. 그럼 오늘도 커피 한 잔, 맛있게 여유를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애너키스트 2014/04/11 16:56 # 답글

    아~ 그렇군요. 그렇게 디테일하게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진 않는거 같아요. 그냥 어느 커피든 향은 좋고 마실때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시게 되고... 세밀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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